Good enough 2/22/2020
새벽에 아린이가 입원했다. 약을 몇 번 안 먹여서였다. 한두 번이었는데 그렇게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다니. 우리 가족은 아린이가 입원한 동안, 서로가 가라앉아 있음을 느꼈다. 다행히 아린이는 응급처치 후 산소탱크에 들어가서 몇 시간을 쉬고 나니 상태가 많이 안정됐다. 1분에 70회 넘게 호흡했던 게 12회로 돌아왔다.
요즈음의 나는 뭐랄까.. 충분히 괜찮은 상태에 있다. 하지만 이렇게 나사가 하나씩 빠질 때마다 느낀다. 이 상태가 얼마나 어렵게, 운 좋게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를.
물론, 나는 여전히 친구가 없다. 다들 떠났고 돌아온 적 없다. 애인도 없다. 가끔 꿈에 떠난 이들이 나타나고, 가끔은 욕 나오게도 아주 사랑스럽게 나와서 그들이 보고싶은 지경에 이른다. 하지만 외로움은 괴로움에 비하면 사치다. 그걸 너무나 잘 알기에 이런 꿈들이 몇 년이 지속되건 웃어넘길 수 있다. 내 삶에 부재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. 그것들을 굳이 메우려 할 필요 없다. 중요한 건 나를 제정신으로 있게 해 주는 것들을 당연시하지 않는 것. 그들에게 충실할 것. 엄마, 아빠, 새언니, 아린이, 석천이, 지혜, 내 자식들, 비교적 건강한 육체.. 이들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내 삶은 휘청일 것을 안다.
건조하게 살게 해주세요. 그게 딱 일년 전 퇴원한 나의 소원이었다. 제발. 심심하게. 귀찮게. 일 분 일 초. 조금만 누워도 목구멍이 닫히고 앉아서조차 잘 수 없던 날들. 사는 것 같지 않았다. 내 인생이 어떻게 무너졌고 얼마나 빠르게 사람들이 등돌렸는지를 머릿속에서 24시간 반복재생 해주던 그 때.
그 때 이진영의 소원이 이제야 이뤄졌다.
난.. 감사하다. 억울한 일은 크고 작게 곧 또 생길 것이다. 그래도. 가진 것에 충실하며 살련다.